"키워드 : 금강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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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필 「금강전도」는 1734년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금강전도’와 ‘겸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갑인동제'라는 관기와 함께 제화시가 적혀 있다.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비로봉을 비롯한 내금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표현하여 산세를 원형으로 배치했다. 이러한 구도는 그가 총도나 전경도 형식의 금강산을 그릴 때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정선 필 금강전도 (鄭敾 筆 金剛全圖)
정선 필 「금강전도」는 1734년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금강전도’와 ‘겸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갑인동제'라는 관기와 함께 제화시가 적혀 있다.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비로봉을 비롯한 내금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표현하여 산세를 원형으로 배치했다. 이러한 구도는 그가 총도나 전경도 형식의 금강산을 그릴 때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금강전도십이곡병은 조선 후기의 12폭 채색 금강전도 병풍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각 폭 세로 131.5㎝, 가로 28. 2㎝이다. 각 폭 그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동해의 모습이, 좌측 끝에는 암봉 7개가 그려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외금강의 봉우리와 전망대가 솟아 있으며, 그 위로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월출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내금강 위주의 전도 형식이 아닌, 외금강 지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병풍의 규모, 형태, 세련된 채색 기법 등으로 볼 때,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장식용 병풍이었음은 확실하다.
금강전도십이곡병 (金剛全圖十二曲屛)
금강전도십이곡병은 조선 후기의 12폭 채색 금강전도 병풍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각 폭 세로 131.5㎝, 가로 28. 2㎝이다. 각 폭 그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동해의 모습이, 좌측 끝에는 암봉 7개가 그려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외금강의 봉우리와 전망대가 솟아 있으며, 그 위로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월출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내금강 위주의 전도 형식이 아닌, 외금강 지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병풍의 규모, 형태, 세련된 채색 기법 등으로 볼 때,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장식용 병풍이었음은 확실하다.
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정선 (鄭敾)
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