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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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재의 여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정규익 (丁奎益)
일제강점기 「서재의 여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나혜석이 여성의 서양화 교육을 위해 1933년에 설립한 미술 교육기관.
여자미술학사 (女子美術學舍)
나혜석이 여성의 서양화 교육을 위해 1933년에 설립한 미술 교육기관.
인상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이다. 인상파 또는 임프레셔니즘이라고도 한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를 1세대 서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이 처음 받아들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지호와 김주경은 인상주의를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인상주의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인상주의 (印象主義)
인상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이다. 인상파 또는 임프레셔니즘이라고도 한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를 1세대 서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이 처음 받아들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지호와 김주경은 인상주의를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인상주의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한국 근대기의 여성화가 나혜석(羅蕙錫)이 그린 자화상.
자화상 (自畵像)
한국 근대기의 여성화가 나혜석(羅蕙錫)이 그린 자화상.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동래부에서 태어났으며, 나혜석과 결혼하였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독립운동가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으나, 1921년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37년 이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김우영 (金雨英)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동래부에서 태어났으며, 나혜석과 결혼하였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독립운동가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으나, 1921년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37년 이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