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청구(靑丘)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6년
사망 연도
1958년
출생지
경상도 동래부(현 부산광역시)
주요 저서
민족공동생활과 도의
주요 경력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 중추원 참의, 국민총력조선연맹 명사부대 충청남도 대표
대표 상훈
서보장
관련 사건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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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우영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동래부에서 태어났으며, 나혜석과 결혼하였다. 1919년 교토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독립운동가 관련 사건들을 변호하였으나, 1921년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안둥현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37년 이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정의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다가 관료로 변신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인적사항

1886년 10월 23일 경상도 동래부[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호는 청구(靑丘)이다. 당대 신여성이자 미술학도인 나혜석(羅蕙錫)과 결혼하였다.

주요 활동

동래 개양학교를 졸업한 후, 190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東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 1909년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에 입학해 1915년 졸업하였으며, 이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 졸업하였고, 그해 일본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10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변호사로 등록하였으며, 이듬해인 1920년 10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개업 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배동석(裵東奭) 사건과 전협(全協), 최익환(崔益煥) 등의 대동단(大同團) 사건 변호를 맡았다. 1921년에는 강택진(姜宅鎭), 이원직(李元稙), 최익한(崔益翰) 등의 군자금 모금 사건을 변호하였다. 1921년 9월 일본 외무성 관리로 변신하여, 만주 안둥현[安東縣] 주재 일본영사관 부영사를 역임하였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2년여에 걸쳐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 세계 여행 중 발생한 아내 나혜석과 천도교 신파 거두 최린(崔麟)의 염문설로 인해 1930년 이혼하였다. 1930년 3월 경성에서 변호사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2년 2월부터 1937년 7월까지 전라남도 산업부 이사관으로 재직하였고, 이어 1937년 7월부터 1940년 4월까지 전라남도 산업부 상공과장과 농촌친흥과장을 역임하였다. 중일전쟁 당시 국방 사상 보급 및 선전을 담당하여 수차례 시국 강연을 하였고, 전몰 군인 및 가족에 대한 위문 업무도 담당하였다.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0년 4월 훈6등 단광욱일장(單光旭日章), 7월 훈5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이후에도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을 인정받아 1942년 12월 훈4등 서보장, 1943년 10월 종4위 훈장을 받았다.

1940년 9월부터는 충청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 사무관으로 산업부장을 맡았고, 충청남도농회 회장을 겸임하였다. 1943년 9월 조선총독의 자문 기구인 중추원의 칙임관 대우 참의에 임명되어 1944년 5월까지 재직하였다. 1944년 5월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의 ‘명사파견원’으로 홋카이도[北海道]에 파견되어 조선인 징용자들을 위문 시찰하고, 잡지에 내선일체를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44년 9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선인 징용을 선전하기 위해 조직한 ‘명사부대’의 충청남도 대표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1945년 12월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가 바로 부산으로 옮겼다. 이후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나, 2월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1951년 신생공론사라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였다. 1958년 4월 16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민족공동생활과 도의(道義)』[신생공론사, 1957]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친일인명사전』(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파군상』(민족정경문화연구소, 삼성문화사, 1948)

신문·잡지 기사

『동아일보』
『매일신보』
『삼천리』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조선총독부관보』
『중앙일보』,
『중외일보』

기타자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

인터넷 자료

집필자
윤덕영(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한국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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