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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방전이란 조선 후기에 왕실의 궁(宮)이나 방(房)이 소유 또는 수조하던 토지이다. 일명 궁장토(宮庄土)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내수사전(內需司田)을 포함하여 지칭하므로 사궁장토(司宮庄土)라고도 하였다. 궁방전은 출세결과 면세결로 구분되며, 면세결은 다시 유토면세(有土免稅)와 무토면세(無土免稅)로 나뉜다.
궁방전 (宮房田)
궁방전이란 조선 후기에 왕실의 궁(宮)이나 방(房)이 소유 또는 수조하던 토지이다. 일명 궁장토(宮庄土)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내수사전(內需司田)을 포함하여 지칭하므로 사궁장토(司宮庄土)라고도 하였다. 궁방전은 출세결과 면세결로 구분되며, 면세결은 다시 유토면세(有土免稅)와 무토면세(無土免稅)로 나뉜다.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
궁사전 (宮司田)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