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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의 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Oppert의 南延君墓 盜掘事件)
1868년(고종 5)의 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왕족·정치인 이하응의 아버지 이구의 묘.
남연군의 묘 (南延君의 墓)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왕족·정치인 이하응의 아버지 이구의 묘.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병인박해 (丙寅迫害)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유릉(裕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릉골에 있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능이다. 112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의 보존급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으나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도금 자물쇠와 개원통보 등 일부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릉 (裕陵)
유릉(裕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릉골에 있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능이다. 1122년에 조성되었으며, 북한의 보존급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릉은 3층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만 남아 있고 석수와 석인 등은 사라진 상태이다. 197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가 밝혀졌으나 널방에 부장되었던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도금 자물쇠와 개원통보 등 일부 유물이 출토되었다.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
후릉 (厚陵)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