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청주성_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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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에 활약했던 의병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춘무와 조헌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의병진에서 종군하여 청주성전투와 진천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태안군수, 충청수군 우후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인조를 호종하려다 광주에서 전사하였다.
박동명 (朴東命)
박동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에 활약했던 의병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춘무와 조헌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의병진에서 종군하여 청주성전투와 진천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태안군수, 충청수군 우후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인조를 호종하려다 광주에서 전사하였다.
김개남은 19세기 후반 동학농민운동 당시 호남창의소 총관령 등을 역임한 동학교단의 호남 대접주이다. 1890년경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이후 삼례집회와 보은집회 때 큰 활약을 하여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총관령직을 맡아서 동학농민군의 중심 지도부가 되었다. 2차 봉기 이후 북상하는 과정에서 청주성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곳에서 대패한 후 체포되어 1895년 1월 처형되었다.
김개남 (金開南)
김개남은 19세기 후반 동학농민운동 당시 호남창의소 총관령 등을 역임한 동학교단의 호남 대접주이다. 1890년경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이후 삼례집회와 보은집회 때 큰 활약을 하여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총관령직을 맡아서 동학농민군의 중심 지도부가 되었다. 2차 봉기 이후 북상하는 과정에서 청주성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곳에서 대패한 후 체포되어 1895년 1월 처형되었다.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규 (靈圭)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온양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전한 관리·의병.
양응춘 (楊應春)
조선 중기에, 온양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전한 관리·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