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명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활동한 의병.
이칭
시응(時應)
매은당(梅隱堂)
시호
충경(忠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5년(선조 8)
사망 연도
1636년(인조 14)
본관
순천(順天)
주요 관직
태안군수|충청수군 우후(虞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박동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에 활약했던 의병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춘무와 조헌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의병진에서 종군하여 청주성전투와 진천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태안군수, 충청수군 우후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인조를 호종하려다 광주에서 전사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활동한 의병.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시응(時應), 호는 매은당(梅隱堂),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아버지는 박춘무(朴春茂), 어머니는 우봉이씨(牛峯李氏)이다.

주요 활동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춘무와 조헌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의병에서 선봉이 되었다. 청주성전투와 진천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군은 한성과 평양성까지 침략하였지만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진격하고자 하였다. 청주성은 호남으로 가기 위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조선과 일본의 군사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다. 조헌과 영규대사는 서문을, 박춘무는 남문을 공격하였는데, 박동명은 박춘무 의병진에서 활동하였다. 1592년 7월 하순에 시작하여 8월 1일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청주성에서 퇴각한 일본군은 진천을 점거하고 있던 군사에 합류하였는데, 박춘무 의병진은 곧 진격하여 진천성을 포위하였으나 수적 열세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가 남쪽의 포위를 풀어 퇴로를 열어 준 후 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시켰다. 이로써 진천지역까지 수복하는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599년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1607년 사간원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이후 울진현감에 제수되었고 1617년 제주판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맏아들 박홍원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하여 반란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그 후 태안군수를 역임하였고, 절충장군인 충청도수군 우후로 있다가 1631년 가선대부 공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주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고, 1652년 자헌대부 공조판서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1708년(숙종 34)에 정려가 세워졌고, 1899년(고종 35) 충경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원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매은당실기(梅隱堂實記)』
『선조실록(宣祖實錄)』

단행본

이석린, 『義兵將 朴春茂 一家의 三代倡義錄』(청주향교, 2005)

논문

유동호, 「임진전쟁 초기 청주지역 의병진의 성격과 활동-朴春茂와 趙綱 의병진을 중심으로」(『한국민족문화』 66,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8)
고수연, 「朝鮮時代 淸州地域 인물의 文集刊行과 그 의미」(『역사와 담론』 79, 호서사학회, 2016)
김강식, 「조선후기 順天朴氏 가문의 忠義 정신과 의병 활동」(『우암논총』 3, 충북대학교 우암연구소, 2010)
이석린, 「壬亂期 順天 朴氏 三代 倡義 硏究」(『중원문화논총』 7,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0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