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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삼보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법장의 『화엄경명법품내입삼보장』을 풀이한 불교 주석서이다. 현재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보유편에 수록되어 있는 상, 하 2권본이 현존 유일본이다. 법장으로 대표되는 중국계 화엄과 의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상계 화엄의 교설을 융섭하려는 균여의 사상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화엄경삼보장원통기 (華嚴經三寶章圓通記)
『화엄경삼보장원통기』는 고려 전기 승려 균여가 법장의 『화엄경명법품내입삼보장』을 풀이한 불교 주석서이다. 현재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보유편에 수록되어 있는 상, 하 2권본이 현존 유일본이다. 법장으로 대표되는 중국계 화엄과 의상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상계 화엄의 교설을 융섭하려는 균여의 사상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균여 (均如)
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