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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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행(行幸)은 동북아시아의 왕조 국가 군주들이 궁궐 외부로 거둥하는 일종의 의례이다. 행행(幸行)이라고도 한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유교 국가의 군주가 통치기간 중에 늘 거행하던 정치 행위였다. 국가의 의례적 전범(典範)으로 사직과 종묘의 제사, 능행(陵幸), 원행(園幸), 열무(閱武), 강무(講武), 사냥 등을 거행할 때 시행되었다. 격쟁(擊錚)이라는 행위를 통해 직접 국왕에게 상언(上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국왕과 민인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었기 때문에 국왕이 대외적으로 왕실의 적통성과 권력자로서의 통치권을 확인할 수 있는 의례였다.
행행 (行幸)
행행(行幸)은 동북아시아의 왕조 국가 군주들이 궁궐 외부로 거둥하는 일종의 의례이다. 행행(幸行)이라고도 한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유교 국가의 군주가 통치기간 중에 늘 거행하던 정치 행위였다. 국가의 의례적 전범(典範)으로 사직과 종묘의 제사, 능행(陵幸), 원행(園幸), 열무(閱武), 강무(講武), 사냥 등을 거행할 때 시행되었다. 격쟁(擊錚)이라는 행위를 통해 직접 국왕에게 상언(上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국왕과 민인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었기 때문에 국왕이 대외적으로 왕실의 적통성과 권력자로서의 통치권을 확인할 수 있는 의례였다.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감계사등록 (勘界事謄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