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夫餘)
120년 위구태(尉仇台)는 부여왕자로서, 136년에는 부여왕으로서 직접 한(漢)나라를 방문했고, 한은 그를 융숭히 대접하였다. 또한 위구태는 당시 요동의 지배자였던 공손탁(公孫度) 집안의 여인과 혼인을 하였다.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244∼245) 현도태수 왕기(王頎)가 부여를 방문했고, 부여는 그들에게 군량을 제공하였다. 양측 간에는 그 뒤에도 밀접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한편, 부여는 동으로 읍루족을 복속시켜 공납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220년대 초 읍루가 떨어져나가자 몇 번 공격했으나 험난한 지형과 완강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끝내 평정하지 못하였다. 부여인은 농업을 영위해 오곡을 생산하였다. 목축도 성행해 말·소·돼지·개 등이 주요한 가축이었다. 특히, 부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