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말기의 혼란 속에서 공손 탁은 요동후(遼東侯)·평주목(平州牧)을 자처하고 요동 일대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요동의 중국인 사회만을 장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구려와 오환(烏丸) 등을 무력으로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다른 종족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에는 고구려와 선비족(鮮卑族)이 방해가 되었다. 부여는 부여족의 종주적 세력이었으나, 이때에 와서는 고구려의 위력 앞에 오히려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양측은 상호간의 필요에 의하여 쉽게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 동맹관계가 얼마 동안이나 계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같은 동맹의 결성은 고구려의 국력성장에 따른 파급효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