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장무장군 등을 역임한 장수.
개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후(侯)로 삼도록 하라는 왕명이 있었다. 증조부 식(式)은 막리지(莫離支)를 지냈고, 할아버지 양(量)은 위두대형 겸 대상(位頭大兄兼大相)을 지냈으며, 아버지 문(文)은 위두대형 겸 장군(位頭大兄兼將軍)을 지냈다.
생애 및 활동사항
696년 거란을 토벌하는 군사(軍事)에서 문이 여하도토격대사(濾河道討擊大使)에 임명되어 출진하자 종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장무장군(壯武將軍)을 제수받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아버지와 함께 거란군에 잡혀 33세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당나라에서는 이들 부자의 공을 크게 기려 장사를 후히 지내주고 관직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어린 시절부터 당나라에서 자라났고 활동무대도 중국이었던 만큼, 고구려 유민사(遺民史)의 측면에서 주목이 되며, 그의 묘비명은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에 대한 직접 간접의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76)
-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 1(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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