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

  • 역사
  • 인물
  • 삼국
  • 남북국
삼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장무장군 등을 역임한 장수.
이칭
  • 지첩(智捷)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697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무장군(壯武將軍)
  • 출생 연도665년(보장왕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기흥 (건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고자묘지 미디어 정보

고자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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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장무장군 등을 역임한 장수.

개설

자는 지첩(智捷). 묘지명이 전하고 있다. 묘지명에 의하면 그의 조상은 고구려의 건국기에서부터 왕실의 측근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그의 20대조인 밀(密)은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왕성인 고씨(高氏)를 하사받고 식읍 3,000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후(侯)로 삼도록 하라는 왕명이 있었다. 증조부 식(式)은 막리지(莫離支)를 지냈고, 할아버지 양(量)은 위두대형 겸 대상(位頭大兄兼大相)을 지냈으며, 아버지 문(文)은 위두대형 겸 장군(位頭大兄兼將軍)을 지냈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런데 문은 고구려말에 나라가 위태롭게 된 즈음에 친족을 거느리고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문은 당나라로부터 명위장군(明威將軍) 등을 제수받았고 무신으로 점차 높은 관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고자는 아버지의 공훈에 힘입어 우무위장상(右武衛長上) 등을 받았다.

696년 거란을 토벌하는 군사(軍事)에서 문이 여하도토격대사(濾河道討擊大使)에 임명되어 출진하자 종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장무장군(壯武將軍)을 제수받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아버지와 함께 거란군에 잡혀 33세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당나라에서는 이들 부자의 공을 크게 기려 장사를 후히 지내주고 관직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어린 시절부터 당나라에서 자라났고 활동무대도 중국이었던 만큼, 고구려 유민사(遺民史)의 측면에서 주목이 되며, 그의 묘비명은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에 대한 직접 간접의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76)

  • -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 1(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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