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崔致遠)이 쓴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는 왕자(王子)라고 되어 있으나, 어느 왕의 아들인지 확실하지 않다. 897년(경왕 28) 7월 하정사(賀正使)로 당나라에 들어갔다.
그는 발해가 크고 군사가 강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당나라에서는 조헌(朝獻)할 때 발해 사신의 자리의 순서를 신라 사신의 아래에 두고 있었다.
이에 서장을 올려 발해가 신라 위에 거하도록 허락하여줄 것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는 당시 신라와 발해가 국제사회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외교전으로서, 일반적으로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爭長事件)’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