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원익(李元翼)과 권율(權慄)이 원균에게 “후방을 경계하는 동시에 수군을 출전시켜 바다로 침범하는 일본 수군의 길을 막으라.”고 하였는데, 원균은 먼저 육상병력으로 안골포(安骨浦)를 공격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전투에 임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종사관 남이공(南以恭)이 직접 한산도로 가서 전투에 참여할 것을 재촉하자, 원균은 남이공과 함께 6월 18일 100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다음날 안골포로 쳐들어갔다.
이 때 일본 수군들은 해변에 숨어서 대포를 쏘다가 다시 배를 타고 반격하여왔으나, 원균이 거느린 전선들은 이를 물리치고 가덕도방면으로 나아갔는데, 마침 안골포의 일본 수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던 일본 수군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다카하시 무네마스[高橋統增] 등이 거느린 수군과 맞부딪쳐 싸우다가 크게 패하고, 부산까지 진격하지 못한 채 칠천량(漆川梁)으로 되돌아와서 진을 쳤다.
이 해전에서 평산포 만호 김축(金軸)은 눈 밑에 철환을 맞아 부상하였고,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은 철환을 맞고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