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언정(彦精), 호는 송암(松巖). 할아버지는 김수련(金守連)이며, 아버지는 영원군수(寧遠郡守) 김이상(金履祥)이다.
1549년(명종 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55년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校理)·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평양판관 등을 거쳐 부여현감·평창군수가 되었다. 1592년 회양부사에 제수되었다.
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강원도로 침범하게 되므로 군사와 관리들이 모두 도망치고 말았는데, 홀로 회양성 문앞에 정좌한 채 왜적에게 참살당하였다. 처음에 회양부사로서 왜적의 침범을 당하게 되자, 군사와 무기 등이 없었으므로 대적하기 어려움을 알고 죽음으로써 지킬 것을 맹세하여 절명시 한 수를 써놓았다.
또, 왜적이 경내에 쳐들어오는 것이 임박하자 조복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왜적이 위협하려고 먼저 손가락을 찍었으나, 분연히 꾸짖으며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뒤에 조정에서는 김연광이 나라를 위하여 죽은 절개를 기리고자 정표(旌表)하게 하였고, 성혼(成渾)과 유성룡(柳成龍) 등이 그 충절을 포증(褒贈)하기를 청하여 예조참판을 증직하였다. 평소 재상 윤두수(尹斗壽)는 사람됨을 경탄하여, 그 어머니를 찾아 절하고 형제의 의를 맺기도 하였다.
개성의 숭절사(崇節祠)에 제향되었다. 시문에 능하고 박학하였으며 강직하고 청렴하면서 깨끗한 풍모를 지녔다. 저서로는 『송암유고(松巖遺稿)』 한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