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때 사(使)·부사(副使)·지후(祗候)가 있었고, 문종 관제에 판사(判事, 정3품)·지사(知事)·사(使, 정5품)·인진사(引進使, 정5품, 2인)·인진부사(引進副使, 종5품)·각문부사(閣門副使, 정6품)·통사사인(通事舍人, 정7품, 4인)·지후(정7품, 4인)·권지지후(權知祗候, 6인)를 두었으며, 이속(吏屬)으로는 승지(4인)·청두(聽頭, 20인)·기관(記官, 1인)을 두었다.
본래 국가의 건국과 때를 맞추어 의전의 주관관서를 설치하게 되는데, 고려 때에는 황제통치체제의 의전을 행하는 상징으로 원구제의(圜丘祭儀)가 성종 이전에 행하여졌다.
『고려사』 예지의 원구단에 치제(治祭)하는 의식절차에 각문과 그 소속원의 소임이 기록되고, 각문봉례(閣門奉禮)·찬인(贊引) 등이 확인되는데, 이는 성종 이전에 각문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각문은 고려 초기부터 충렬왕 이전에 중요한 의전관부로서 존속하였던 것이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여 각문이 원나라의 관서명이므로 이를 낮추어 통례문(通禮門)으로 고쳤으며,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각문으로 복구하였다.
그 뒤 1308년에 중문(中門)으로 개정했다가 곧 통례문으로 바꾸었다. 또한, 1356년(공민왕 5)과 1369년에 각각 각문으로 복구하였고, 1372년에 다시 통례문으로 불렀다. →통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