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 문하부(중서문하성)는 백규(百揆)의 서무를 관장하고 그 낭사는 간쟁과 봉박(封駁)을 관장하였다고 보이듯이, 중서문하성은 크게 2품 이상의 성재(省宰)와 3품 이하의 낭사로 구분된다.
낭사를 다시 세분하면 좌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 이하 간의대부(諫議大夫)·보궐(補闕)·습유(拾遺) 등의 순간관직(純諫官職), 기거주(起居注)·기거랑·기거사인(起居舍人) 등의 사관직(史官職), 급사중(級事中)·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의 판관직(判官職)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들은 모두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의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즉, 낭사에 속하는 기거랑 등은 왕의 측근에서 간관의 임무를 담당하는 한편, 왕의 동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송나라의 기거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관의 구실을 하게 되어 위와 같은 세분이 가능해진 것으로 보이나, 고려 전체를 통하여 실제로는 간관직을 주로 수행하였다.
품질(品秩)은 문종 때 종5품으로 정하였다가 공민왕 때 정5품으로 올렸다. 조선 개국 초의 관제에도 1401년(태종 1) 7월까지 문하부가 존재하여 기거주의 이름이 보이지만 기거랑과 기거사인의 명칭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