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갈암(葛菴) 이현일(1627∼1704)이 만년에 후학을 위해 강도(講道)하던 곳이다. 이현일은 본관이 재령(載寧)이다. 이시명(李時明)의 아들이며, 존재(存齋)이휘일(李徽逸)의 아우이다. 1679년(숙종 5) 학행으로 천거되어 지평에 발탁되고, 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나, 남인정권의 몰락으로 홍원·종성·광양 등에 유배되었다.
1700년 방면되어 환향할 때 세거지였던 경상도 영해 인량리나 영양 석보의 남악정(南嶽亭)으로 가지 않고 안동부 금소리에 우거(寓居)하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학문을 강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