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05m. 현재 갑사 중심부에서 벗어나 계곡을 건너 남쪽 경내에 있으나 본래는 갑사의 뒤쪽 계룡산중에 있었던 것이다. 원위치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17년 현위치로 옮겨 세웠다.
구조는 기본형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에서는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8각의 높직한 지대석 위에 3층으로 구분되는 지대석이 놓였는데, 하층이 넓고 상층은 차차 줄어들었다.
하단에는 8각의 형태를 지키면서 각 귀퉁이마다 밑에서 연잎이 피어나는 모양을 하고, 각 면에는 한 구씩의 형태를 달리하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모두 원각(圓刻)에 가까운 대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상단에는 운룡문(雲龍文)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는데 그 수법이 웅혼장려하다. 그 상하단의 조각 안으로는 홈이 패어 있는데 특히 하단에는 홈의 물이 밖으로 빠지도록 장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그 홈의 중앙에서 한 단의 높은 8각 받침이 솟아 중대석(中臺石)을 받치게 되어 있다.
중대석은 거의 원에 가까운데 각 귀퉁이에 해당하는 위치에 꽃모양의 무늬가 튀어나왔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돋을새김되었다. 상대석은 8각으로 밑에 두툼한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는 32잎의 연꽃이 둘려 있으며 중앙에 2단의 굄이 있다.
탑신석(塔身石)도 8각으로 가는 주형(柱形)이 있고 전후 양면에는 문호형(門戶形)과 자물쇠가 새겨졌고, 그 좌우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이 두드러지게 돋을새김되었다. 옥개(屋蓋)는 높이가 높은 데 비해서 넓이가 좁아 안정감을 잃었으나 표면과 뒷면의 조각들은 정교하다.
옥개석 밑에는 여러 단의 받침을 중심으로 가는 연목(椽木 : 서까래)이 촘촘히 있고, 지붕 위 낙수면에는 굵은 우동(隅棟) 8조가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사이에 역시 가는 기왓골이 여러 줄 모각되었다.
상륜(相輪)은 지금 남은 것이 없고 새로 만들어 올려놓은 보주(寶珠)가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조각들에 웅대한 기백이 넘쳐흐르며 각 부에 변화를 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상부에 갈수록 조법(彫法)이 약해져서 옥개에 이르러 목조건물양식의 모각은 정교함을 지나 섬약에 흐른 점이 눈에 띈다.
더욱이 옥개석이 지나치게 작아진 점은 이 부도의 전체적 조형에서 하나의 결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건립연대가 떨어짐을 짐작하게 하며, 기단부의 조각은 특히 고려시대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면에 조각된 각종 문양과 그 기법 등으로 본다면 고려시대 부도 가운데서도 우수작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며, 조각 내용도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