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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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정면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정면
서예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 무장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탑비.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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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무장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탑비. 보물.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33m. 비신(碑身)은 현재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훼손된 채로 보관되어 있으며 절터에는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이 비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의 비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을 조성할 때 세운 것으로, 건립연대는 801년으로 추정된다.

이수에는 ‘阿彌陀佛□□(아미타불□□)’이라는 여섯 글자를 2행으로 새겼는데, 이수 왼쪽 면에는 김정희(金正喜)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쌍귀부는 부러져 없어졌으며 이수의 일부분도 부러졌다. 귀부의 발은 도식화되었으며 귀갑 중앙에 장방형의 높다란 비좌를 설정하고 비좌 네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이처럼 귀부에 십이지신상을 조식한 것은 퍽 특이한 예에 속한다. 잘린 이수에는 반룡(蟠龍: 승천하지 않은 용)이 운기문(雲氣文) 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어서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신라태종무열왕릉비(新羅太宗武烈王陵碑) 이후 이수가 남아 있는 예가 없는 통일신라기 이수의 변천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 4 보물 2(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집필자
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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