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강화상(康和尙). 진주 출신. 일찍이 포로가 되어 몽골에 가 강수형(康守衡)이라 이름을 고치고, 원나라 궁정에서 고려관계 통역을 맡았다.
원종을 원나라로부터 호위하여 귀국하였으며, 1274년(충렬왕 즉위년) 11월에 추밀원부사 판위위시사 상장군(樞密院副使判衛尉寺事上將軍)이 되었다.
1275년 10월에 원나라 황실과 고려왕실과의 통혼문제(通婚問題) 및 고려의 관제를 강등시키는 문제 등에 관한 원나라 세조의 조서를 가지고, 원나라의 사신 악탈연(岳脫衍)과 같이 고려에 왔다.
1278년 2월에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가 되고, 같은해 4월 북경동지(北京同知)로서 원나라에 가는 충렬왕을 보좌하였다.
또한, 원나라의 대령총관(大寧摠官)이 되어 고려 사신이 오면 이를 안내하였고, 1287년 7월에 내안대왕(乃顔大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경총관(東京摠官)이 되어 반란진압에 참여하였으며,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