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구(子久), 호는 복천(復泉) · 자운(紫雲).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강첨(姜籤)이다.
1609년(광해군 1) 생원이 되었으나, 병이 잦아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하며 은거하였다.
1623년(인조 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연기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6년 사어(司禦)가 되고, 이듬해 신령현감에 임명되어 부임하려 할 때 후금이 침입하여 조정에서 화의를 논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돌아와 오랑캐와 화의할 수 없음을 상소하였다.
1632년 사예(司藝), 이듬해 사업(司業)으로 지평을 겸하였고, 1634년 장령이 되어 공신들에 의한 정치의 폐단을 상소하여 파직당하고 은진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풀려났다. 그뒤 1654년(효종 5)에 홍명하(洪命夏)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초서에 뛰어났으며, 청빈하였고 의를 내세워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다.
회덕의 용호사(龍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