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아버지는 참봉 곽지인(郭之仁)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72년 성균관의 천거로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노모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원하여 김천찰방으로 전직되었다가, 내섬시직장·송라찰방을 역임하고 1585년 학행으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에 특진되었다. 이어 홍산현감·군자감판관을 거쳐 예천군수로 있던 중 파직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초계군(草溪郡)의 임시수령으로 기용되어 왜군과 싸웠으며 곧 예빈시부정으로 전직명령이 내렸으나, 유생 정유명(鄭惟明) 등의 유임상소에 의해 초계군수로 유임되어 강우(江右) 지역의 보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학문을 즐겼고 사람됨이 순정하여 가는 곳마다 학풍을 일으켰으며, 찰방으로 있을 때에는 풍속을 순화하였다. 현풍의 도동서원(道東書院) 별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