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적인 의미의 궁리와 실천론적인 뜻의 거경을 합하여 거경궁리라고 한다. 송나라 때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에 의해서 경(敬)이 비로소 철학적으로 다루어졌고, 주희(朱熹)에 의해서 궁리가 강조되었다. 조선시대에 이황(李滉)이 계승하여 거경궁리의 철학적 의의를 심화시켰다.
경의 연원은 유교경전에서 이미 진술되었으나, 송대의 정호·정이·주희에 의해서 중요한 개념이 되었고, 이황에 의해서 더욱 철학적으로 다루어졌다.
경 개념을 살펴보자. ≪논어≫에 “조용히 있을 때에는 공손해야 하고, 일을 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또 “내 몸은 경으로써 닦아야 한다(修己以敬).”고 하였다.
≪맹자≫에는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항상 남이 그를 공경한다.”라든지 “숙부를 공경한다.”는 말이 있다. ≪서경≫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오교(五敎)를 펴되 너그럽게 하라.”고 하였다.
≪시경≫에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들으라.”고 하였다. ≪역경≫에는 “경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로운 행동으로 밖을 바르게 한다.”는 글이 보인다.
정호는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데는 경뿐이다.”라고 강조하였고, 정이는 “의(義)란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는 주석을 붙이기도 하였다.
나아가서 그의 수양론에서는 치지(致知)와 아울러 “함양은 경으로 해야 한다(涵養須用敬).”고 주장한다. 이를 계승한 주희는 치지를 매우 강조한다. 그는 ≪대학≫ 보망장(補亡章)을 지어 궁리의 문제를 크게 보완하고 있다.
≪논어≫에는 이(理)자가 보이지 않고, ≪맹자≫에 시조리(始條理)·종조리(終條理)라는 말이 있다. “금소리는 시조리요, 옥소리를 내는 것은 종조리라.”고 하여, 이의 연역적인 의미와 귀납적인 두 측면을 설명하였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시조리(始條理)는 지(智)에 속하는 것이고, 종조리(終條理)는 실천론적인 측면에서 성(聖)에 속하는 일이라고도 말한다. 이밖에 맹자는 이(理)와 의를 사람 마음의 보편자라고 생각하여, 인심의 일반적인 것이 이와 의라고 지적하였다.
≪주역≫에서는 ‘황중통리(黃中通理)’나 ‘천하의 이치(天下之理)’라든가 ‘궁리진성(窮理盡性)’이라는 표현으로 창조적인 뜻을 나타냈다.
이러한 경전의 이는 송나라 때에 와서 정호에 의하여 하늘의 이치를 말하게 되고, 그는 자신의 체험을 언급하기도 하여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주희는 이를 철학적 형이상학으로 파악하여, ≪대학≫의 격치장(格致章)을 보충하기에 이른다. 그는 치지하려면 물(物)에 즉(卽)하여 이치를 구명해야 한다고 하여, 경험을 통한 체득을 강조한다.
주돈이(周敦頤)는 주정(主靜)을 주장했던 반면에, 정호와 정이는 도교나 불교의 정(靜)과 혼동을 피하여 주경(主敬)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황은 이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여 ‘거경궁리’의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그의 이론은 <천명도 天命圖>에 반영되었고, ≪성학십도 聖學十圖≫가 저술되었다. 이황의 거경과 궁리는 다음과 같다.
이황은 학문의 시종을 경으로 생각하고, 일상 생활도 경으로 실천하였다. 이황의 학문에서 경은 이(理)와 함께 근간을 이루며, 의리분별의 주체적인 근거이다. 또한 존양(存養)과 성찰은 경 공부의 두 날개이기도 하다.
이황은 학문하는 소이(所以)를 심(心)과 이로 생각한다. 심은 경 공부의 부분이고, 이는 격치(格致) 공부의 부분이다.
<천명도>에는 심권(心圈)내에도 경을 가운데 고정시키고 있다. 그 제10절에서는 심과 주재, 그리고 경과 학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신의 주재를 심이라 하고 심의 작용이 정의(情意)라고 하였다.
≪성학십도≫의 제3 소학도에서는 성인에게서 학문의 시작과 끝을 이룸은 바로 경임을 말하고 있다. 제4 대학도에서는 ≪성학십도≫ 전체가 경을 주로 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학문의 궁극 목표가 군자성인(君子聖人)이 되는 데 있다면, 이황의 학문에서 경을 떠나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바라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경은 인간의 주체성과 분리할 수 없는 핵심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의 주체적 기능이야말로 의리의 분변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다.
주체적이라고 함은 그렇지 않은 곳이 없고 그렇지 않은 때가 없음을 의미한다. 주재(主宰)는 심과 이(理)와 태극을 연결해서 이해되는데, 심은 일신의 주재이며 경은 또 일심의 주재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이황에게는 경을 떠난 주체는 성립될 수가 없다. 이 주체는 있지 않는 곳이 없고 그렇지 않은 때가 없는 진리성을 충족시켜주어야 하므로, 이 기능은 공간적으로 내외가 없고 시간적으로 단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주경(主敬)으로 해결하여 오직 주경의 공효만이 동정을 일관한다고 언급하였다.
이황에 의하면, 경의 주체기능은 의리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 때의 의는 ‘의이방외(義以方外)’의 의며, 이 의는 ‘경이직내(敬以直內)’의 경과 이어진다. 즉, 경에 입각한 의이다.
이(利)가 ‘불모기리(不謀其利)’ 하는 이(利)라면, 부정되어야만 할 이인 것이다. 그러한 이(利)와 의(義)를 분별하는 일은 유학 본연의 의미이기도 한 까닭에 주희도 일찍이 강조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 주체를 확립하느냐 하는 방법도 역시 중요하다.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존양과 성찰이다. 경은 유사무사(有事無事)·유의무의(有意無意)·동시정시(動時靜時)를 막론하고 일관하는 것이라고 할 때, 존양은 무사·무의·정시의 공부이며, 성찰은 유사·유의·동시의 공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무사시의 경 공부는 성성(惺惺)일 따름이라.”고 했고, “가만히 있을 때는 천리의 본연을 함양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이황은 “주재의 확립을 위해서는 그 주장이 많지만, 정(程)·사(謝)·윤(尹)·주(朱)의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였다.
정사윤주의 주장이란 정이의 주일무적(主一無適)·정제엄숙(整齊嚴肅), 사양좌(謝良佐)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尹焞)의 순수수렴(純粹收斂), 주희의 경을 의미한다. 경 공부는 무사시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운봉호씨(雲峯胡氏)는 계구(戒懼)를 동시경(動時敬)이라 하고, 신독(愼獨)을 정시경(靜時敬)이라고 하였다. ≪성학십도≫ 제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에서 일건석척(日乾夕惕)하는 뜻을 살필 수 있다.
도(道)의 유행은 잠시도 멈춤이 없으므로, 이 없는 자리도 없고 이 없는 순간도 없으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간에 경 공부를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무사시의 존양과 함께 유사시의 성찰은 경 공부에 중요한 양면이라는 것이다.
거경과 궁리는 똑같이 중요하다. 궁리가 능하면 거경에 대한 공부가 날로 진척되고, 거경 공부가 능하면 궁리 공부가 날로 치밀해지는 서로의 관련을 갖는다. 이러한 궁리와 거경을 중시하면서 이황은 반궁천실(反躬踐實)을 더하여, 이 세 가지를 진지(眞知)에 도달하는 필수적인 공부로 생각한다.
궁리는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와 소당연지리(所當然之理)를 밝히는 것으로서, 소이연을 알면 지(志)의 현혹됨을 면할 수 있고, 소당연을 알면 행이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높이게 된다.
이때에 소당연은 사리에 관한 것이고 소이연은 인심에 관한 것이라고 구분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분리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참으로 아는 것이 진지인데, 이황은 이 진지가 어려운 이유는 이가 심과 사(事) 모두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재심재물의 일리투철(一理透徹)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일리투철의 체용관계가 문제된다. 이황은 이것을 그의 이도설(理到說)로 소화한다. 물리의 극처에 도달한다고 할 때, 극처는 내외의 공간적인 것이, 그리고 도달은 빈주(賓主)의 주객이 문제된다.
주객의 입장에서 ‘나 자신이 극처에 도달함’인지, ‘극처가 나에게 도달함’인지의 양론이 있을 수 있으며, 공간적인 의미에서는 외물의 극과 내심의 극의 양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물아빈주(物我賓主)의 분열 없이 통(統)을 유지하고, 내외로서의 극이 하나로 회통하는 경지는 이황의 격치설과 이도설의 핵심을 이룬다. 이(理)는 무형무위(無形無爲)이며 기(氣)는 유형유위(有形有爲)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러한 이기와 나와의 관계는 선명해야 한다.
이황은 주체적 기능을 중시할 때, 무위의 이를 유위와 모순 없이 통(統)을 정립하는 문제로 고심한다. 소이(所以)로서의 이와 용(用)으로서의 기는 자못 심합이기(心合理氣)를 연상시키지만, 심의 체가 이에 구비되어 있으며, 이 이가 무소불해(無所不該)라고 할 때 심합이기의 이와 무소불해의 이를 하나로 모아서 이의 발현이라는 주체기능에 상도한다.
이것은 물격(物格)이 되면 이능자도(理能自到)할 것이기 때문에, 격물의 미진함을 염려할 것이지 이에 능히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라고 한다.
이황은 궁도극처(窮到極處)가 심이요, 나[我]이기는 하지만 심도(心到)나 아도(我到)라고 해서는 병이 된다고만 하여, 도극(到極)의 주빈, 내외의 융회의 모호성으로부터 이체심용(理體心用)의 묘를 이도(理到)의 주장으로 정립하였다.
이러한 이발(理發)의 발과 이도(理到)의 도에서 이를 높이고자 하는 이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발(發)이 그의 도덕연원에 근본한 윤리적인 표현이라면, 도(到)는 이체심용에 활연관통하는 묘경의 철학적인 자기극복의 경지로 비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