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明倫)’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滕文公篇)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성균관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익혔으며, 또한 왕이 직접 유생들에게 강시(講試)한 곳이다.
1398년(태조 7)에 성균관 대성전(大成殿) 북쪽에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좌우에 협실(夾室)이 있고 중간에 당(堂)이 있어 총 18칸이며, 앞에는 각각 18칸의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성균관의 유생들이 기거하던 재실(齋室)이다. 지방의 명륜당이 대성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 데 반하여 성균관의 명륜당은 대성전 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곳에서 조선 말엽까지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국민의 도의정신과 사회정의를 부식하고 교화하는 근원(首善之地)이 되었다. 그리고 역대 왕이 때때로 행차하여 대성전에 참배하고 유생들을 격려하기도 하였으며 왕세자가 입학할 때에는 문묘에 석채례(釋菜禮: 석존례)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양사상과 문화의 진수를 우리의 오랜 전통 속에 심어 고전정신을 북돋워 새로운 역사 창조의 바탕을 마련한 곳이며, 경전의 이해도를 측정하는 시험이나 소과(小科)·대과(大科)를 행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어왔다.
명륜당 안에는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중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는 주희(朱熹)의 ‘백록동규(白鹿洞規)’ 현판이 있고, 2개의 어필 현판, 송준길(宋浚吉)이 쓴 「심잠(心箴)」과 「경재잠(敬齋箴)」이 있다.
그밖에 ‘夙興夜寐箴(숙흥야매잠)’ 등 여러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모두 궁리수신(窮理修身)과 처사접물(處事接物)의 정주사상(程朱思想)을 기본으로 삼은 것들이다. 이러한 게시문들은 명륜당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유생들에게 항상 눈에 뜨이게 하여 지식 습득에만 치우치지 않고 마음공부를 일깨우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추녀 밑에 있는 ‘明倫堂(명륜당)’ 글씨는 1606년(선조 39)에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쓴 것이라고 전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