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승의 문집인 ≪고봉집(高峰集)≫에는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라 하여 상·하편으로 편찬되고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퇴계전서(退溪全書)≫에는 제16권과 제17권에 기대승의 서간(書簡)으로 모아져 있다.
원래 이기는 송나라 때의 성리학에서 사용되는 우주론적(宇宙論的)인 용어로서 대개 이(理)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요, 기(氣)는 형이하학적인 개념으로 통용된다.
‘사단칠정분이기’란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로 갈라서 분속(分屬)시키는 데 대한 왕복논변한 글을 뜻한다. 즉 사단을 이에, 칠정을 기에 분속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그 타당성 여부를 논란한 것이다.
그 발단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에서 시작된다. 정지운이 “사단은 이(理)에서 발(發)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다”고 했던 것을 이황이 “사단이 이의 발(發)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라고 수정한 데서 문제가 되었다.
사단도 칠정도 다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인데 한 마음의 성(性)과 정(情)이 하나는 이에서 발하고 다른 하나는 기에서 발한다면 같은 마음에 근원이 두 곳에 있는 것이 되어서 조리가 닿지 않는다는 모순을 가져오게 된다.
사우(師友)들 사이에 있던 논란을 전해들은 이황은 다시 이것을 “사단의 발은 순수한 이치이므로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기를 겸하므로 선과 악이 있다”고 수정해서 기대승에게 대답한 이후 왕복이 거듭되었던 서(書)가 왕복서에 모두 집록되어 있다.
이황은 이의 순수성을 기와는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발(理發)을 기발(氣發)과 구분하려는 것이요, 그렇게 되면 발하는 근원처가 두 곳에 있는 것이 되므로 부당하다는 견해에서 어느 것도 이기(理氣)의 공발(共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나선 것이 기대승이다.
이황의 주장을 호발설(互發說)이라고 한다. 이도 발하고 기도 발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인 것이다. 그 뒤 이황은 재차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탄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는 주장으로 굳어졌다. 정지운이 발언한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는 것이 이황에 의해서 세번 고쳐진 것이다.
첫 번째는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고, 두 번째는 “사단의 발은 순리이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기를 겸하므로 선악이 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사단은 이가 발해서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이가 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황에 의해서 전해진 정지운의 <천명구도(天命舊圖)>와는 달리 정지운의 원작(原作)인 <천명도해(天命圖解)>의 발견으로 그가 처음에는 발에 관한 도식(圖式)이 전혀 없음이 주목된다.
이 책에서는 한국 성리학에서의 이황과 기대승의 이기설을 알아볼 수 있고, 특히 전후 7년 간에 걸쳐 논변된 내용의 전말을 망라하고 있다. 이 ≪사단칠정분이기왕복서≫는 많은 성리학자들에게 한국 성리학의 기본으로 읽혀졌고, 기대승의 주장이 이이(李珥)에게 이어지면서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