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태인(泰仁).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학통사(倭學通事)로 상주(尙州)를 방어하고 있던 이일(李鎰)의 진중에 있다가,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에게 포로로 잡혔다.
고니시는 경응순으로 하여금 도요토미[豊臣秀吉]의 강화를 요청하는 서계(書契: 일본과의 외교문서)를 조정에 전달하게 하였는데, 내용은 일찍이 선위사(宣慰使)로 왜사(倭使)를 접대한 적이 있는 이덕형(李德馨)을 강화사절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조정의 명에 의하여 이덕형을 따라 다시 충주로 향하여 가던 도중, 충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덕형을 가지 못하게 만류하고 스스로 적정(敵情)을 살피러 나섰다가 가토[加藤淸正]의 군사에게 잡혀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