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안(遂安). 자는 희문(希文), 호는 경재(敬齋). 아버지는 계형원(桂馨遠)이다.
천성이 충후(忠厚)하였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군사가 향리인 선천을 위협하자, 아들 계천상(桂天祥) · 계익상(桂益祥)과 더불어 의병 수백명을 모집하고 군량과 병기를 모아 사포(沙浦)의 강안(江岸)에 주둔하여 적을 기다렸다.
오랑캐 수백기(數百騎)가 공격하여오자 배수진을 치고 매복전술을 이용하여 싸워 크게 이기고 물러나 고령포(古嶺浦)에 진을 쳤다. 다음날 새벽 적병 대군이 다시 공격해오자 종일토록 힘껏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아들 계천상은 포로로 잡혀 항복하기를 종용받고 모진 형벌에 처하여졌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으며, 결국 석방되어 송환되었다. 1682년(숙종 8) 조정에서 그 공훈을 기려 정려를 세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