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 ()

불교
인물
대한제국기 때, 부안 내소사에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한 승려.
이칭
만허(滿虛)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6년(철종 7)
사망 연도
1935년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시
정의
대한제국기 때, 부안 내소사에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을 양성한 승려.
개설

성은 한씨(韓氏), 호는 만허(滿虛). 경화는 법명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생. 아버지는 득문(得文)이며,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남평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13세에 출가하여 장성백양사(白羊寺)설계(雪磎)의 제자가 되었고, 어머니를 절에서 가까운 암근촌(巖近村)으로 모셔다가 봉양하였다.

그 뒤, 서관(瑞寬)으로부터 불경을 배우고 나주의 다보사(多寶寺)에 머물렀으며, 30세에 관해(觀海)의 법맥을 이었다. 그 뒤 여러 혼란을 겪으며 황폐화된 부안내소사(來蘇寺)의 중창을 발원하고 화은(華隱)과 함께 노력하여 10여년 동안 모든 건물을 중창하였다.

그리고 속인들에게 빼앗긴 부안실상사(實相寺)의 토지를 찾기 위해서 덕산(德山)과 함께 수십 차례 소송을 제기하자, 마을의 부자들이 그의 정성에 감명을 받아 땅을 되돌려주었다.

또한, 내소사에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관해를 조실(祖室)로 추대하여 후학들의 공부를 도왔으며, 월명암(月明庵)이 소실되자 학명(鶴鳴)과 함께 선실을 건립하고 선을 닦다가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9년 뒤에 문도 명철(明喆) 등이 스승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행적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석전문초(石顚文抄)』
집필자
이종익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