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 1397년(태조 7)에 창건하였으나 1399년(정종 2)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1601년(선조 34)에 대성전이, 그리고 1604년에 명륜당이 재차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경사지에 외삼문-명륜당-내삼문-대성전을 하나의 축선상에 배치하여 뚜렷한 수직적 위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대성전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바르게 쌓았으며 전면에 동 · 서 두개의 계단이 있다. 또한 기단 양 끝에는 정료대(庭寮臺)가 붙어 있다. 본래 석전의식(釋奠儀式)은 전 새벽에 이루어졌으므로 관솔이나 기름을 태워 불을 밝힐 수 있는 정료대가 각 향교마다 있었지만, 현재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측면 박공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달았다. 기둥자리만을 둥글게 치석한 사각의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의 흘림이 뚜렷하다. 퇴칸을 구성하였으며 전면 주간의 길이는 일정하여 주간마다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배치하여 장여와 도리는 받는다. 각 칸에는 중앙에 2짝 판문이 달려 있다.
공포는 2출목 2익공 형식이며, 쇠서[牛舌]는 유약하고 보머리는 용두를 조각하여 장식하고 있다. 대성전내에는 공자를 주벽으로 하고 중국의 4성과 4현, 우리나라의 18현을 배향하고 있다. 본래는 동 · 서 양무(兩廡)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성전에 함께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