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왕 때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金庾信)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국가가 취선사에 기진(寄進)한 30결(結)의 토지이다.
『삼국유사』 미추왕죽엽군조(未鄒王竹葉軍條)에 실린 설화에 의하면 779년(혜공왕 15) 김유신의 혼령이 미추왕릉을 찾아가 그의 자손이 무고하게 주살당하였음을 호소하며 신라를 떠나고자 한다는 것을 혜공왕이 전하여 듣고, 김유신의 능에 김경신(金敬信)을 보내어 사과하는 한편, 공덕보전을 기진하였다고 한다.
보(寶)는 시납(施納)된 전곡(錢穀)이나 토지를 자본으로 하여 이식을 얻어 특정목적에 사용하는 것인데, 공덕보전은 김유신의 명복을 빌기 위한 공덕보에 시납된 토지라는 의미이며, 그 운영은 취선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 공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