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절구로 모두 12수이다. 작자의 문집 『경수당전고』 권34(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춘향가」를 연행하는 창자(唱者)의 모습과 이것을 보는 관중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단순히 연희모습을 표현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을 작자 나름대로 소화시켜 치밀하게 구성을 한 데 특징이 있다.
제1수는 전체의 도입부로서 본격적인 연희가 벌어지기 전 구경꾼들이 모이는 광경을 묘사했다. 제2수는 구경꾼 중 남녀간의 애틋한 정을, 제3수에서는 판소리를 시작하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단가를 부르는 창자의 모습을, 제4수는 「춘향가」에 대한 당시 청중들의 반응을, 제5수는 당대 명창인 고수관(高壽寬)·송흥록(宋興祿)·염계달(廉季達)·모흥갑(牟興甲)과 김용운(金龍雲)에 대한 묘사를 했다.
제6수는 청중들의 「춘향가」에 대한 감상태도를, 제7수는 창의 다채로움을, 제8·9수는 7수에 이은 판소리에 대한 감상을, 제10수는 판소리의 장면을 보고 느낀 자신의 심정을, 제11수는 광대의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넋을 잃고 구경하는 관중들의 심리를, 제12수는 공연이 끝나고 고요해진 연희장을 묘사하였다.
「관극절구12수」는 판소리가 창극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작품으로서 19세기 전기 판소리의 면모를 가장 섬세하게 보여주는 소리〔唱〕에 대한 대표적 작품이다. 이로 인해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춘향가」의 면모를 살필 수 있고, 당시 배우들의 연희모습, 무대정경, 관중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신위는 평소 연극에 깊은 관심을 가져 당시 천대받던 기인(伎人)들을 동정했으며, 명창 고수관과의 교분도 무척 두터웠다. 그의 작품 「관극절구12수」는 뒤에 나온 윤달선(尹達善)의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와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