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교육활동이 힘써 당시 안동지역의 문풍(文風)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한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선생의 종택이다.
유일재파의 선대는 퇴촌(退村) 김 열(金 閱)을 파조(派祖)로 하고 있는데 그의 23세손인 김용석(金用石)이 풍천면 구담리로 낙향한 후, 유일재 김언기가 가야(佳野)로 이거하였다.
이 집은 김언기의 9대손인 김도상(金道常)이 다시 이곳으로 옮기면서 매입한 것으로 건립년대는 1700년대말로 추정된다. 고택은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배산하여 서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정침은 정면 8간 측면 2간 규모의 구자형(口字形)건물이다. 평면은 중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 사랑채를 두고 우측에는 외양간과 온돌방 2개를 두었는데, 좌측간의 사랑마루와 우측간의 온돌방이 좌우로 돌출되어 양날개집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정침의 전체적인 평면은 안동지방의 지역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나, 부엌의 위치가 안방과 반대쪽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평면상의 특징이다. 사당(祠堂)은 사랑채의 좌후측인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면 3간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가구(架構)는 3량가(三樑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