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연대는 미상이다. 윤주하의 동생 윤평하(尹坪夏)와 문인 이승래(李承來)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차례 다음에 윤평하의 발문이 있다.
본집 20권 10책, 목록 1책, 합 20권 11책. 목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450여수, 권3∼14에 소(疏) 3편, 서(書) 287편, 별지(別紙)·문목(問目), 권15에 서(序) 13편, 기(記) 8편, 발(跋) 7편, 권16·17에 잡저 13편, 권18에 혼서(昏書) 3편, 상량문 4편, 명(銘) 2편, 뇌사(誄詞) 3편, 제문 26편, 권19에 축문 13편, 행장 3편, 행록(行錄) 7편, 가장(家狀) 2편, 권20에 유사(遺事) 13편, 전(傳)·묘지명 각 1편, 묘갈명 3편, 묘표 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그가 9세 때 지은 「우음(偶吟)」과 서정이 강하게 스민 「노강주중(露江舟中)」·「망해(望海)」·「관창(觀漲)」을 비롯하여, 연작으로 된 「동유제영(東遊諸詠)」·「삼봉서당십이영(三峯書堂十二詠)」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가 가르침을 받거나 깊이 교유한 많은 인물의 만시(輓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와 폭넓은 주제의 작품이 고루 망라되어 있다.
소에는 그의 선조의 증직(贈職)을 청원하는 내용의 소 2편,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의 체결에 강력히 반대하고 오적(五賊)을 통렬히 비판하는 「을사의소(乙巳擬疏)」 등이 실려 있다.
서(書)에는 그의 스승인 허전(許傳)·장복추(張福樞)·이진상(李震相) 등에게 예법과 선인의 문집간행 등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으로 된 다수의 「상성재허선생(上性齋許先生)」·「상사미헌장선생(上四未軒張先生)」·「상한주이선생(上寒洲李先生)」 등과 문목(問目)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교우나 친척들과 학문을 연마하면서 느낀 의문점에 대하여 질의·응답하거나 멸망해 가는 조국의 시대적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걱정스런 마음을 토로한 것 등 인생사 전반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가 다수 실려 있다.
서(序)에는 「박씨가장삼보묵서(朴氏家藏三寶墨序)」·「화순최씨세고서(和順崔氏世稿序)」·「용강실기서(龍岡實記序)」·「만화첩서(晩花帖序)」·「고정거우서(考亭擧隅序)」·「찬축고증서(贊祝考證序)」 등과 각종 계(契) 조직의 내력을 서술한 것이 실려 있다. 기에는 박철진(朴喆鎭)의 아내인 분성배씨(盆城裵氏)의 효행과 열행을 서술한 「효열부배유인정려기(孝烈婦裵孺人旌閭記)」·「오현당기(五賢堂記)」·「영모재기(永慕齋記)」 등이 있으며, 발에는 『수구재집(守口齋集)』·『완산세고(完山世稿)』·『자동집(紫東集)』·『파산세고(坡山世稿)』 등에 대한 발문이 실려 있다.
잡저에는 그가 평생 동안 세속적인 출세에 초연한 채 전심으로 연구한 학문의 성과가 집중적으로 서술된 「심경강록후설(心經講錄後說)」·「독남명집(讀南冥集)」·「변신이산(두선)심성설(辨申梨山(斗善)心性說)」·「변면우급후산여조중근강설시자경경부제군(辨俛宇及后山與曺仲謹講設示子敬敬夫諸君)」·「반구록(反究錄)」·「간서우기(看書偶記)」 등과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교우들에게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여 국권을 되찾고 외세의 배격을 통해 자주정신을 확립하는 데 뜻을 같이하자고 촉구하는 내용의 「고동지문(告同志文)」 등이 실려 있다.
이밖에 조카와 아들의 혼서, 「동계정선생신도비각상량문(桐溪鄭先生神道碑閣上樑文)」을 비롯하여 유후조(柳厚祚)·윤광은(尹光殷) 등에 대한 뇌사, 「최문창후영정봉안문(崔文昌侯影幀奉安文)」, 박희전(朴熙典)·정필달(鄭必達)의 행장 등이 실려 있다. 또한, 그의 종증조 윤억(尹檍)에 대한 가장을 비롯하여 양부 및 생부에 대한 행록, 「송열부박유인전(宋烈婦朴孺人傳)」 외에 많은 유사·묘갈명·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