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7년(현종 8)에 광주(廣州)지방 유림의 공의로 이집(李集)·이양중(李養中)·정성근(鄭誠謹)·정엽(鄭曄)·오윤겸(吳允謙)·임숙영(任叔英)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원우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1697년(숙종 23)에 ‘구암’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경 훼철된 후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위패는 땅에 묻고, 현재 그 자리에는 조두비(俎豆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