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정승을 지낸 권보(權溥)이다.
충숙왕 때 사복부정(司僕副正)을 제수받고 누천하여 1321년 우대언으로 전직, 민부전서(民部典書)가 된 뒤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5년간 시종한 공로로 귀국하여 이등공신에 책봉되었다.
이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승진하였다. 일찍이 합포만호(合浦萬戶)를 지냈는데 충숙왕이 복위하자 만호가 되려고 여러 번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원나라의 세력가에 의지, 이준(李俊)을 대신해서 순군만호(巡軍萬戶)가 되었다.
1330년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1344년에 찬성사에 올랐다. 충목왕이 왕위를 이어 고려로 돌아올 때 옥새를 받들고 행궁에 나갔고, 서연관에 발탁되어 시독(侍讀)하였다. 1345년(충목왕 1) 판삼사사(判三司事)로서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파견되었다.
1352년(공민왕 1)에 복안부원군(福安府院君)으로서 원나라에 가서 딸을 황태자에게 바치고 태부감태감(太府監太監)이 되었다.
1354년 원나라의 요청으로 장사성(張士誠) 토벌작전에 동원되었다가 그 이듬해 귀국하였다. 당시 정남만호(征南萬戶)로서 반란군의 기세가 강하다는 점과 고려군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공민왕의 배원정책(排元政策)에 의하여 1356년 기철(奇轍)·노책(盧頙) 등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