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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영 · 정조 연간에 사치 풍조를 막기 위해 무역 금지물품 종류를 규정한 법제서.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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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영 · 정조 연간에 사치 풍조를 막기 위해 무역 금지물품 종류를 규정한 법제서. 사목.
서지적 사항

1책 12장. 목판본.

내용

사행(使行) 때 중국과의 무역에서 문주가 많이 수입되어 사치 풍조가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린 것이다. 내용은 선조수교(先朝受敎)·당조수교(當朝受敎)·사목·사행뇌거사목(使行齎去事目)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선조수교는 1746년(영조 22)에 내린 금문교지(禁紋敎旨)이며, 당조수교는 1787년(정조 11)에 내린 교지이다. 사목(10조)에는 금지 물품의 종류가 기록되었다. 사행뇌거사목(13조)에는 사행 때의 무역 금지 물품 명세와 그것을 어길 때의 형벌 등이 실려 있다.

사치품에 속하는 사라능기(紗羅綾綺 : 모든 비단)는 중국에서 오는 무역품으로서 조선 초부터 수입이 금지되었다. 태조 때에는 조정의 관원 외에는 사라능기를 입을 수 없다고 명령했으나 부녀자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다가, 세종 때에 이를 금하였다. 이후 성종·연산군·중종 때는 물론이요 대대로 금령을 내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1746년 4월에도 사치풍조를 고치려고 가체신금절목(加髢申禁節目)과 더불어 금지 규정을 내리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곤의(袞衣)·적의(翟衣)·장복(章服) 등에 반드시 문단(紋緞)을 써야 한다고 하여 문단릉(紋緞綾)의 기이한 문양, 이상한 색과 사단(紗緞)의 유문화주(有紋花紬)의 종류만 금하기로 하였다. 1763년 11월에 금지 물품에 문금(紋錦)을 포함해 북경(北京)에서 문금을 수입해오는 것, 일본에서 주기류(珠璣類:보석류)를 수입해오는 것을 일체 금하였다.

그 뒤 박문수(朴文秀)에게 ≪상방정례 尙方定例≫ 등을 편찬하게해 명부(命婦:내·외명부의 총칭)의 장복에는 모두 향직(鄕織: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직물)을 사용하게 했으나 얼마 안 가서 허물어지고 말았다.

1787년 10월에는 다시 엄한 명령을 내려 곤의(袞衣, 雲紋)·첩리(帖裏:龍紋)·적의(翟衣, 金線)·연여(輦輿:雲紋)의 문단은 전과 같이 거행하였다. 단, 조신 장복의 운문, 장신(將臣) 군복용 운문과 상으로 내려준 대접무늬 이외 사단의 여러가지 문양이나 주량사(注兩紗)·항라(亢羅)·지주(只紬)·소릉(小綾)의 문양이 있는 것은 모두 금지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북경에서 수입해온 물품의 발기[件記]를 보면 그 동안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서목(書目)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및 당시 국내 수공업의 미발달로 말미암은 미봉책이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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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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