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년(희종 7) 왕이 근신 왕준명(王濬明)·우승경(于承慶) 등과 더불어 최충헌(崔忠獻)을 죽이려 할 때, 당시 지유(指諭)로서 신선주(申宣胄) 등과 더불어 최충헌을 구출하여 크게 신임을 얻었다.
1217년(고종 4)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였을 때 개경시가에 군사를 배치하여 적의 침략에 대비하였으며, 이어 대장군으로 가발병마사(加發兵馬使)가 되어 고주(高州: 지금의 함경남도 고원)·화주(和州: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에서 거란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나 군사개편으로 오군(五軍)과 가발병을 폐지하고 삼군(三軍)을 설치함에 따라 가발병마사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