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580년(선조 13)에 지방유림이 김안국(金安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유림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이언적(李彦迪)과 홍인우(洪仁祐)를 추가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61년(현종 2) 정엽(鄭曄) · 이원익(李元翼) · 홍명구(洪命耉), 1708년(숙종 34) · 이식(李植), 그뒤 홍명하(洪命夏)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제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뒤 다시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877년 김영진(金泳鎭) 등 여주지방 향유(鄕儒) 100여명의 기금으로 사우만을 중건, 모현사(慕賢祠)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3칸의 모현사가 있으며, 50m 근처에 재실(齋室)이 있다. 모현사에는 김안국 · 이언적 · 홍인우 · 정엽 · 이원익 · 이식 · 홍명구 · 홍명하의 순으로 위패가 일렬로 봉안되어 있다.
매년 2월 중정(中丁: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3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장홍식(張鴻植)이 쓴 현판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2천 5백 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