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안(景顔), 호는 웅음(雄飮). 형조판서 김자지(金自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잉(金仍)이고, 아버지는 감찬(金巑)이며, 어머니는 전좌명(田佐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주부로서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판관·청도군수·수원부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덕성이 뛰어나 중종이 잠저에 있을 때에는 사부(師傅)로 있었다. 1507년(중종 2) 정과출신자라 하여 참상판관으로 특채되자 대간이 그 부당성을 왕에게 건의한 바 있다.
1512년 청도군수로 있을 때는 왜인을 추국하는 데 너무 심하게 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았고, 사헌부에서도 파직을 요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벼슬은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죽은 뒤 중종이 애석해하면서 특별히 관곽 각 1부와 석회 30석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