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감을 역임한 장수.
인물/전통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대감(大監)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감을 역임한 장수.
내용

신라 하대에는 왕위가 정상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왕위를 무력으로 탈취하려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836년에 김균정(金均貞)이 왕위계승 쟁탈전에서 김제륭(金悌隆 : 희강왕)에게 패사(敗死)하자, 838년(민애왕 1)에 김균정의 아들 우징(祐徵)과 태종무열왕의 9세손인 김양(金陽)이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 세력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대감(大監)이던 김민주는 민애왕의 명령으로  무주(武州) 철야현(鐵冶縣 : 지금의  나주시 남평읍)에서 김우징의 반란군을 맞아 싸우다 대패했다. 그가 패하자 이듬해 1월에 김우징은 민애왕을 몰아내고 신무왕으로 즉위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하대(新羅下代) 왕위계승(王位繼承)과 정치과정(政治過程)」(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 85, 1980)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