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전기에 외교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였다. 장군으로서 1234년(고종 21)과 1238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고에 파견되어, 그 결과 5년여간 침구(侵寇)를 자행한 몽고군을 일시 철수시켰다.
1241년 몽고의 인질이 된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 일행을 수행하였고, 1251년에는 동지추밀원사 최경(崔璟)과 함께 상장군으로 다시 몽고에 파견되었다. 1253년 몽고가 다시 침구하자 복야로서 영안백(永安伯) 왕희(王僖)와 함께 몽고군에게 철군을 호소하였고, 1258년 적장 차라대(車羅大)에게 파견되어 외교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추밀원사로 승진되고, 이듬해에 협약에 따라 몽고에 입조하는 태자 왕전(王倎: 元宗)을 시종하였다가 현지에 억류되었다. 1260년(원종 1) 귀국하여 곧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이부상서가 되었다. 대몽항전기말 평장사 최자(崔滋)와 함께 몽고와의 강화 및 출륙환도(出陸還都)의 대표적인 주창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