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3년 경상도 운문(雲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을 거점으로 농민을 모아 난을 일으키고 초전(草田: 지금의 경상남도 울산)에서 봉기한 효심(孝心) 등과 모의, 신라부흥을 표방하며 경상도의 여러 지역에서 기세를 올렸다.
더욱이 당시의 집정자이며 경주 출신으로 역시 신라부흥을 꿈꾸던 이의민(李義旼)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하여 토벌군으로 편성되어온 이의민의 아들인 장군 이지순(李至純)으로부터 군사기밀을 제공받아, 대장군 전존걸(全存傑)의 정부군을 번번이 격파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다시 정부로부터 파견된 상장군 최인(崔仁), 대장군 고용지(高湧之)의 토벌군에게 격파당하여 이듬해 2월 투항하였으나 참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