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덕(豊德). 자는 정양(廷揚), 호는 남정(嵐亭). 할아버지는 사직(司直)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승중(曺承重)의 딸이다.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金山)에 거주하면서 『가례(家禮)』에 의한 상례(喪禮)를 철저히 준행하는 한편, 효행이 뛰어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로 인해 1518년(중종 13)에는 유학(幼學)으로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에 의해 현량과(賢良科)에 피천(被薦)되었으며, 이듬해 다시 거상(居喪)의 예를 다하였음이 조정에 알려져 금산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시창의 효절(孝節)은 『삼강록(三綱錄)』에 수록되었으며, 죽은 뒤 참봉에 추증됨과 아울러 황간(黃澗)의 모현서원(慕賢書院)과 금산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효는 효절(孝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