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창고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주택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에, 동 · 서행랑채는 1930년에 건립되어졌다.
담장을 대신하며 길게 배치되어 있는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내외담이 앞을 막는다. 이 곳에서 다시 일각문을 통해 사랑으로 갈 수 있으며 안마당은 담장을 돌아 들어가게 된다. 안채는 정면에서 보면 一자집과 같이 보이나 뒤쪽으로 방을 덧달아 낸 ㄱ자집이다.
사랑채도 이와 유사한 평면을 하고 있으나 전면에 누마루가 돌출되어 있다. 누마루인 청풍루(淸風樓)는 사방에 분합문이 설치되어 있다. 분합문은 들쇠를 달아 모두 개방할 수 있어서 여기에 앉아 정원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데, 정원은 일본식 조원(造園)수법이 가미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날개부를 서로 마주하고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사이에 벽돌담을 쌓아 공간을 분리하였다.
그러나 내부는 복도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상류주택의 공간구획을 기본으로 하며 실생활의 편리함을 취하였다. 이와 같은 주거의 근대성은 평면과 구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거실과 침실을 분류하여 사랑채 가장 깊숙한 곳에 별도의 침실을 마련하였고, 측면에도 별도의 변소를 세우고 여기에 세면소를 부설하였다. 또한 전후면 마루 끝에는 유리 분합문을 달았으며, 처마의 부연 밖으로 함석차양을 다는 등 근대 주거의 건축특징을 보여준다.
반면에 안채는 비교적 전통적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상류주택이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 속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