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98년 4월에 지정되었다. 이 문서는 1401년(태종 1) 2월 태종 즉위에 공이 있는 46인을 좌명공신으로 책봉한 뒤 내린 공신교서 및 공신책봉 이후 조선 초기 이래의 역대공신들이 회맹한 회맹록이다.
김영렬은 본관이 의성(義城)이고, 자는 열지(熱之)이며, 호는 맹암(孟巖)으로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벼슬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여말 선초의 변혁기에 무반으로 입신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생애 전반기의 경력은 불분명하고, 1394년(태조 3)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京畿右道水軍僉節制使)에 임명된 이후 수군절제사 · 중추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400년(정종 2) 병조참판에 올라 태종의 왕위계승에 참여하여 좌명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 사후에 우의정에 증직되고, 시호는 양소(襄昭)이며, 예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맹암집』이 있다. 공신교서는 김영렬 · 이래(李來) · 윤목(尹穆) 등에게 내린 것으로 이들 3인이 박포(朴苞)의 난에 공이 있음을 간단히 기록한 뒤 양전(養田) 80결, 노비 8구 등을 하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회맹록은 1401년 당시 생존한 개국(開國) · 정사(定社) · 좌명(佐命) 공신 66인이 모여 하늘에 맹세한 뒤 작성한 것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발급한 공문서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에 있는 의성김씨 맹암문중(孟巖門中)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