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호부장(糊附裝). 100면. 저자의 첫 시조집으로 1953년 성동공업 인쇄부에서 간행하였다. 원래 제목은 ‘시조집’으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저자의 ‘머리말’이 있고, 목차, 본문, 성동공업 인쇄부의 ‘발간사(發刊辭)’의 순서로 짜여져 있다. 「맹춘입산(孟春入山)」·「춘경(春景)」·「봄」·「고적」·「꿈」 등 93수 53편의 시조를 실었다.
작자는 1930년 12월 『조선일보』에 「무제음사수(無題吟四首)」를 처음으로 발표한데 이어, 1930년대에 『조선문단』·『신가정』·『조선문학』·『중앙』·『신인문학』·『시원』·『여성』과 1945년 『여성문화』에 많은 양의 시조를 실었다. 이들 시조에 제목을 고치거나 다시 달고, 자구를 수정하여 체재를 잡은 것이 김오남시조집이다.
한 쪽에 한 수씩 실었다. ‘머리말’에서 “우리에게는 비애와 고통이 가슴에 넘처올라 ○을 잃고 멍하니 앉었을 때가 있읍네다. 팔자도 이 감정에 지배를 받아 마음이 괴로우면 자연을 찾고 산수나 화조를 벗삼아 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네다. 그 때 그 정한을 적은 것이 지금 이 시조입네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읽으시다가 혹 감명하시는 바가 있다하면 즐겁게 생각하겠읍네다.”라고 적었다.
이 시조집에서는 대체적으로 평범한 시상과 수사의 미숙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시가 늘 인생의 덧없음의 개념에서 출발하야 명확한 형상과 구체성을 띠인 표현 즉 개성화에 이르지 못하고 그 개념의 설명에 그치고 마는 수가 많다.”고 한 박용철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시조의 기본적인 틀을 지키고자 저자가 기울였던 보수적 노력이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