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 황해도 안악 출생. 평양 숭실학교 졸업. 영국인 선교사로부터 음악을 공부하였고 정악전습소에서 국악을 연구하였다. 한국악단의 선구자의 한사람으로 김인식(金仁湜)·이상준(李尙俊)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교사로서 음악교육분야를 개척하였다.
가곡 「봉선화」의 작사자로, 1919년 홍난파(洪蘭坡) 작곡의 바이올린곡 「애수(哀愁)」에 「봉선화」라는 가사를 붙여 민족의 설움을 노래한 가곡 「봉선화」를 탄생케 하였다.
1921년 9월 23일 종로조선중앙기독교 청년학관에서 열린 동서음악대연주회에서 코넷(cornet)을 독주한 바 있으며, 그 후 새문안교회에서 코넷과 클라리넷(clarinet) 연주회를 자주 개최하였고, 피아니스트 김영환(金永煥)의 반주로 오랫동안 성악가로서도 활동을 하였다.
진남포 예수교 소학교를 비롯하여, 경신중학교·정신여학교·중앙고등학교·경기공업고등학교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고, 국악을 채보 및 오선보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근대 양악사를 개척한 동시에 전통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양악과 국악의 재통합을 시도했다는 음악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많은 곡을 편곡하였고 또 가사를 만들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봉선화」, 「저 구름의 탓」, 「나물 캐는 처녀」 등 세 편의 가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