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청음유집(淸陰遺集)』에도 수록되어 최근 『청음전서(淸陰全書)』로 간행되었다. 필사본과 간행본은 거의 차이가 없으나 전자가 더 원형에 가깝다.
이 책은 1636년(인조 14) 12월 12일 적군의 침입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이듬 해 1월 30일 삼전도(三田渡)에서의 강화 성립 뒤 2월 2일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0일간의 남한산성에서의 항전 생활과 조정의 동향을 기록하였다.
말미에는 그 자신의 척화대의를 논한 상소 1편, 서간문 3편 및 강화 주창자들의 명단, 순절자 · 항전장수 · 독전어사(督戰御史) · 호종(扈從)한 종실(宗室) · 부마 · 문무신, 경기도 지역 수령들의 명단과 그들의 행적을 첨부하였다.
본문은 12월 21일까지는 날짜별로 기록하였으나, 그 뒤부터는 날짜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전후가 바뀐 서술도 있다. 대체로 산성내에서 일어난 중요 사실은 거의 수록되어 있으다. 그러나 사실의 서술이 매우 소략하고 그 대신 자신의 행적과 발언은 상세히 기록하였다.
전체적으로 강경한 척화론의 입장에서 사실을 편파적으로 기술했고, 주화론자들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일관되어 있다. 즉, 주화의 논의가 있을 때마다 그 가담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외에 그들의 개인적 비위와 부도덕성을 자세히 밝히고 자신의 비난을 첨부하였다. 특히 김류(金瑬) · 최명길(崔鳴吉) · 장유(張維) · 이성구(李聖求) 등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이 책에서는 또한 그 자신의 척화론이 한갓 명분과 공담으로 주장된 것이 아니라 당시 적군의 형세를 파악해 싸워볼 만한 현실적 승산 위에서 제기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쟁 초기 적군의 무리한 진격에 따른 피폐상과 말기에 청나라 군대가 처했던 다급한 회군(回軍) 압박, 즉 본토에서의 곤란한 상황을 들어 척화의 현실성을 말하고, 승산의 기회를 무산시킨 주화파의 실책을 지적하였다.
여기서 그의 척화론이 유교적 명분만을 주장한 다른 사람들의 척화론과 큰 차이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공평한 역사 기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병자호란 당시 조정의 동향과 주화파와 척화파와의 대립 · 갈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