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걸대의 ‘걸대’는 요대(遼代) 이후 현재까지 몽고인을 비롯한 몇몇 북방민족들이 중국 혹은 중국인을 지칭하는 ‘키타(이)Kita(i)·키탄Kitan’ 혹은 ‘키다(이)Kida(i)·키단Kidan’을 당시의 중국어 한자음에 의거하여 전사(轉寫)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 이름은 본래 요조(遼朝, 916∼1125)를 수립했던 거란족(契丹族, Khitan)의 호칭이었으나, 그 뒤 ‘중국·중국인’을 의미하게 되었다. 원대(元代)의 여러 문헌에는 ‘걸탑(乞塔, Kita)·걸태(乞台, Kitay)·걸태(乞苔, Kida)’ 등으로 나타난다.
노걸대의 첫 글자 ‘노(老)’의 의미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으나, 그 중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노형(老兄)·노사(老師)·노관인(老官人) 등과 같은 중국어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경칭접두어(敬稱接頭語)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즉, 노걸대의 의미는 국어로 ‘중국(인)님’ 정도로 파악할 수 있다.
『노걸대』와 쌍벽을 이루었던 한학서 『박통사(朴通事)』가 중국인이 박씨(朴氏) 성을 가졌던 조선 통사(박씨는 한국에만 있는 성씨이다)를 부르는 호칭이었다면, 노걸대(중국음은 LauKida)는 조선 통사가 성명을 모르는 중국인을 부르는 호칭이었던 듯하다.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본래 고려 말에 한어(漢語: 북경 지방의 중국어) 회화 학습서로 집필된 듯하지만, 이 책의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종실록』 5년(1423)의 기사이다.
순전히 한자로만 기술된 책과 개별 한자에 정음(正音)과 속음(俗音) 두 가지 중국어음을 한글로 달고, 각 문장 혹은 구절 아래 국역을 부기한 언해본(諺解本)이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여러 번 수정, 간행되었다. 또한, 몽어(蒙語: 몽고어)·왜어(倭語: 일본어)·청어(淸語: 만주어)로도 번역, 간행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상에는 흔히 그러한 여러 가지 간행본들이 구분 없이 ‘노걸대’로만 언급되어 있고, 특히 한어학습용 간행본들은 책의 제목 자체가 ‘노걸대’로만 쓰인 것들이 다수 있다.
한 고려인(후기 간행본에서는 조선인)이 중국을 여행하며 여러 가지 경우에 만나는 중국인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행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중국어 표현과 일반 지식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여관에 드는 방법, 여관주인에게 음식을 요청하고 말[馬]먹이를 요구하는 방법, 당시의 물가,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법, 의원(醫員)을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방법 등이다.
또한, 중국인들이 고려(조선)사람에게 물어봄직한 사항들, 예를 들면 유학(儒學)을 배우는 과정, 인삼과 같이 전통적으로 유명한 고려산물에 대한 대화도 등장하고, 당시 중국의 정치·사회에 관한 언급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노걸대』에는 여행객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표현방법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몽고어와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후세에는 만주어로도 번역된 듯하다.
역대의 몇 가지 간행본이 현재 남아 있는 한학서 『노걸대』는 원대·명대·청대의 중국어 연구에 귀중하고 특이한 자료이며, 그 언해본들이 시대별로 남아 있어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에 이르기까지 국어의 변천 연구에 긴요하게 이용되어 왔다. 『몽어노걸대』와 『청어노걸대』도 몽고어 및 만주어와 국어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왜어노걸대』는 전하지 않고 있다.